한드여! 미드에 무릎꿀지 말지어다!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몇 년 전부터 급 유행을 타기 시작한 미드보기.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하나둘씩 미드를 보기 시작했고, 그 입소문은 나 같은 일자무식 공대생들에게도 한번씩은 “그게 먼데?“ 라는 궁금증을 갖게 만들었다.

게다가 연기 잘한다는 소문난 배우들과 스타일 아이콘으로 불리는 여배우들마저 쇼프로그램에 나와서

“미드같은 드라마를 찍고 싶어요.”

라고 한국인 감독 앞에서 눈 하나 깜작 않고 언제부터 입을 맞추셨는지 하나같은 목소리로 말할 정도니, 이제는 문화인이라 생각한다면 한번정도는 때! 만큼의 분량이라도 봐줘야 하는 정도에 이르렀다.

이에 늘 문화인이라는 자부심으로 모든 한국드라마를 섭렵한 나 역시 당연스럽게 미드 보기에 합류했다.


드라마는 재미없다고 안보는 내 친구는 “아이 러브 프리즌브레이크” 를 외쳤고,

티비보기를 돌같이 하는 내 지인은 “원더풀 히어로즈!”를 외쳤다.

이에 질세라 나도 “브라보!”를 외치려 잔뜩 목청을 높혔건만, 나만 이상한가?

왜 도대체 수많은 미드들은 유독 나에게만 왜! 왜! 왜! 빅재미를 주지 못하는 걸까?


작년쯤 주위에서 칭찬이 자자했던 ‘프리즌 브레이크’는 보다가 너무 긴 스토리와 지루함에 포기했고, 판타지 광팬으로써 기대에 부풀었던 ‘히어로즈’ 도 첫 초반부의 산만한 구성과 너무 많은 인물에 머리가 아파 접었다.

꿈꾸는 10대 청소년 및 20대 초반의 여자들이 많이 본다는 ‘가십걸’은 시즌 1은 다 보았지만 기억에 남는 것이라고는 여배우들이 입었던 옷 스타일뿐이다.

스타일 하면 이 미드 빠질 수 없지! 얼마 전 극장에서 영화로도 보았던 ‘섹스앤더시티’ 를 손수 검색까지 하셔서 드라마로도 보았지만 그게 다다. 사실 이 작품들의 스타일 또한 하나같이 최신 명품들인지라 그냥 딴세상 눈요기만 했을 뿐이다.

그래도 좀 독특한 구성에 혹 했던 미드는 부시대통령 부인도 봤다는 ‘위기의 주부들’ 과 한국에서 어지간하면 뜬다는 병원스토리인 ‘그레이아나토미’ 정도이다.


항상 작품의 옥석을 가려내기를 내 직업인냥 삼았던 나는 슬슬 미드 보기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내가 수준미달이라는 자격지심을 갖게 되었고, 이에 자기 자신 합리화라도 시켜봐야 한다는 생각에 두 나라의 작품에 비교 들어가신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래서 미드다!! 라는 고집하는 이유는 분명 있다.


한드에는 없지만 미드에는 있는것.


첫째, 식상하지 않은 스토리이다.

드라마의 모든 얘기가 사랑으로 시작해 출생의 비밀과 신데렐라 스토리에서 불치병과 이를 초월한 사랑으로 끝나는 한드에서는 없는 여러 분야의 스토리.

작가들도 문제점을 깨닫고 여러 가지 분야로 손을 뻗친다고 뻗쳤지만 그래봤자 그들이 생각해낸 것은 겨우 직업의 다양성 정도랄까?

파티쉐, 아나운서, 북디자이너, 뮤지컬배우등등

미국에서는 몇십명의 작가들이 공동작업을 한다 하니 혼자서 문하생 하나 데리고 쪽대본 쓰느냐고 머리 싸매는 우리 작가들에게는 너무 큰 바람일가?


둘째, 스케일이다.

역시 돈이면 다 되는 세상답게 그들의 작품 스케일에서는 돈이 보인다.

억!소리를 부르는 최고급 자동차들이 도로 씬에서 무지막지하게 찌그러지는 꼴을 보면...


돈의 힘은 위대하다.

스폰서의 힘은 위대하다.


이거 비교 되도 너무 비교되잖아.

한국에서는 그 정도 돈으로는 작품 10편도 넘게 만들었을 텐데...


하긴 히어로즈를 쓴다고 해도 찍을 돈이 없으니 저런 스토리는 아예 넘볼 수 없는 성역일 것이다.

세트장을 빌빌 거리면서 찍는 한국드라마를 보다가 히어로즈나 프리즌 브레이크를 보면 입을 다물 수 없다.



이밖에도 많은 강점이 있겠지만, 이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미드보다
한드에 더 큰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굉장히 사소한 이유이면서 별거 없는 이유이다.


첫째, 공감성이다.

내가 아는 지인은 내가 느끼는 공감성이 문화적 차이에서 온 불편함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이 소리를 듣고 비웃었다.

문화적 차이와 공감성! 이 두 말의 차이를 모르니 하는 소리이다.

미드를 볼때 그들의 스탠드 개그나 풍자개그를 보면서 웃지 못하는 것은 문화적 차이이다.

‘오호라~저게 미국 유머구나’ 하면서 느끼는 것이 문화적 차이인 것이다.

공감성은 그 작품에서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과 작품에 대한 흡입력을 말하는 것이다.


‘베토벤 바이러스’  ‘바람의 화원’  ‘그들이 사는 세상’  ‘ 엄마가 뿔났다’


나는 이들 끝부분에 가서는 항상 다음 회를 기다리는 설레임이 있다.

이것은 그 작품속의 작가와 감독이 말하려는 주제에 내가 공감했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아니야! 그건 네가 한국인이니까! 한국의 정서에 맞는 드라마니까!”

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잘 생각해보자.


비단 한국의 정서에 맞아서라고 할까?

나는 왜 ‘히어로즈’ 를 보고 재미를 느껴도 공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너무 비현실적인 이야기 때문에?

미국과의 문화적 차이 때문에?


I say " NO"!


나는 이 점을 크게는 서양인과 동양인에 차이에서 온다고 본다.

인간 내면의 심리를 서양인은 배우의 표정과 행동, 말에서 표현하지만,

동양인은 이어져가는 스토리에서 그냥 시청자가 바로 자신의 일인냥 느끼게 하는 그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솔직히 연출력이다.

연출가의 능력이란 말이다. 암요!

연출가의 편집능력에서 온거다. 암요!

이게 우리나라의 강점이다.

‘히어로즈’를 보면 초반 너무 산만하다는 가장 큰 단점을 안고 있다.

(나는 보면서 너무 산만해 감독이 누구인지까지 검색했다.)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부분이라서 어쩔 수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변명이다.

이것은 연출가의 편집 능력에서 온거다.


둘째, 배우들의 연기력이다.

나는 지난 수십년동안 국제적인 큰 상에서 연기상을 받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서양인이라는 것에 실소를 금치 못한다.

물론 대단한 연기력을 가지신 분들도 있긴 했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 옛날 작품이고, 난 보지도 못했으니 패스.


또한 지금까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아시아에는 상황이 여의치 않아 변변치 못한 작품들만 찍어댔기에 연기하는 배우들의 연기력 또한 하수급 이였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의 아시아의 연기력은 미국 및 유럽 배우들의 연기력을 뛰어 넘었다 본다.

서양인들의 과장된 액션과 표정에서는 우리의 그 미묘한 심리 묘사, 눈동자 연기를 하지 못한다.
영어라는 언어 자체가 온 입을 다 사용해야 하는 글이니, 어쩌면 이것이 그들의 가장 큰 핸디캡일지도 모른다.


최근 수상작에 오른 동양작품들을 보면 대부분 인간 내면의 자아성찰과 심리묘사를 한 것들이 대다수이다.
서양인들이 블록버스터를 만들때, 동양인들은 인간스토리에 초점을 맞춘다.

이제 심사위원들도 그 미묘한 심리를 연기하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아야 한다.


사실 안면근육 연기를 하는 것보다, 눈동자에 슬픔이 들어있는 연기가 더 힘든 건 당연하지 않나?


지금까지의 내 얘기에 눈꼽 만큼의 공감도 느끼지 못했다면, 그냥 취향차이라고 해두자.

(미드보는 나의 지인 왈: "난 그냥 스케일크고 볼꺼리 많은게 좋아. 가뜩이나 복잡한데 무슨 심리까지.
                                   그런거 보다보면 지겨워.") <---생각차이, 취향차이의 대표적 예.


오늘도 또 사랑이야기로 시작하는 한국 드라마.

이제 지겨울 때도 되었는데도,

난 아직도 수십가지의 가지각색 사랑 이야기에 가슴이 설레인다.


“또 사랑 이야기야?”

라고 우습게 보지 말라.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가치관 중에 가장 순수한 것이 사랑 말고 또 머가 있을까?


Wrriten by Park E.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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